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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자/틀린 해결책들

'행위구원론'이 지닌 위험성, "거짓 은사 조심..."

by 베리베리 2008. 9. 4.
출처: http://www.iloveqt.org/bbs/view.php?id=qtpastor&no=167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좁은 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좁으며 멸망의 길도 처음부터 넓습니다.
좁았다가 넓어지고 넓었다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지요.

이것은 한 번 영생의 길로 출발한 사람은 끝까지 간다는 얘기입니다.
즉, 영생의 길은 처음부터 좁은 길을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신앙생활을 하다가 중간에 벗어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실제적으로는 영생 얻은 신자가 아님에도 신자의 흉내만 낸 것입니다(히브리서 6:4-8).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도 중간에 구원이 상실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신실함을 부정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긴장해야 될 부분은
교인들 중에서 구원받는 사람이 적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창세 이후부터 사람숫자만 따진다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구원받은 사람의 비율을 볼 때 적다라는 말입니다.
교회 내에도 참신자와 거짓 신자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해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것도 문제고,
자신의 구원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좁은 길은 고통과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영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안목과 분별력이 없으면
편한 길로 유혹하는 세속주의, 인본주의, 기복주의, 실용주의로 물든
거짓선지자, 거짓교사, 거짓 목회자의 유혹에 고스란히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지도자들은 종말이 가까울수록 대다수를 차지하여
무지한 사람들을 휩쓸고 다닐 것입니다.

신앙에는 다수결이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기초와 뿌리에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마 7:24-27).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5-2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마태복음 7장 21절은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전체 내용을 보면 그런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뜻'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 의로움,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을 뜻하나요?
이 부분은 산상설교의 결론을 맺어가는 부분인데,
15절부터 나오는 거짓선지자와 연관된 메시지입니다.

이어서 16절은 "그들의 열매를 보면 그들의 잘못된 근본을 알 수 있다"고 주님이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주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귀신을 쫓고, 능력을 행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처음 근본부터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구원을 못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인격적 관계가 없이 단지 은사적 능력만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 현상적인 것으로 미혹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않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7:15-23은 양의 옷을 입고 노략질하는 거짓선지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며,
그 중 21절 말씀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진실로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좋은 나무)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아들 예수를 믿음으로 좋은 나무로 거듭남, 요 6:29,40)은
행하지 않고(믿음으로 거듭나지 않은 나쁜 나무 상태로), 형식적으로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들이며 이런 자들의 은사활동은 데살로니가후서 2:7-12에 나오는 대로
"불법=미혹하는 사탄의 역사로서의 거짓 표적과 기사들"로서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 말씀을 근거로 삼아서 행위 구원 사상이나,
참된 신자들이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거짓말이 됩니다.

이어지는 24-27절 말씀의 의미는 반석(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믿음(하나님의 의)의 터 위에
세우는 것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며, 믿음으로 천국 들어가려 하지 않고
모래(흙=육신)에서 나오는 것(자기의 의)으로 들어가려는 자들은 인정하지 않고
다 무너뜨린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예수(반석) 믿음이 천국 조건임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살리는 예수 복음을 모르면 수건으로 마음 눈이 가려져 죽이는 율법 문자밖에 못 보게 되어서
결국 잘못된 율법주의, 행위신앙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더라도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가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구원의 표징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누구에게나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이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히 6:4-6).
 
거짓선지자나 불신자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있고
기적도 충분히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은 모압의 거짓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예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민 23:4-12; 24:2-9).
그가 하나님의 자녀여서 그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결국 나중에 모압과 이스라엘 남자들의 음행을 조장하여 죽임을 당합니다(민 31:8).
그리고 성경에선 그를 멸망의 길로 간 자로 평가하지요(유다서 1:11, 벧후 2:15, 계 2:14).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도록
하나님의 도구로 쓰인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잠시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분명히 성령께서 잠시 역사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그런 외인들을 잠시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때만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인격적인 거듭남의 역사도 있지만,
위의 경우들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경우에도
잠시 도구로 쓰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현상적인 역사를 일으킨다고 해서
그가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다음 구절을 참조해보십시오.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신 13:1-3).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자신이 감당하는 일이나 교회에서 자신이 해 놓은 것, 내놓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기 증명의 수단으로 삼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이 자기를 자랑하면서 기도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이것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무슨 사역을 하겠다고 나서고, 계획하고, 무슨 봉사를 하겠다고 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내 안에 주님이 정말 계신가? 나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이런 것을 먼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일이나 어떤 사역이나 프로그램에만 몰두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 곧 하나님을 알아가고 자기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귀한 세월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요?


-무명의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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