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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자/하나님과 사람

[퍼온글] 박태환, 그의 매력이 돋보이는 이유

by 베리베리 2008. 8. 12.

출처: http://mediagom.mediaus.co.kr/entry/%EB%B0%95%ED%83%9C%ED%99%98%EA%B3%BC-%E2%80%98%EA%B5%AD%EA%B8%B0%EC%97%90-%EB%8C%80%ED%95%9C-%EB%A7%B9%EC%84%B8%E2%80%99

[세상풍경] 박태환, 그의 매력이 돋보이는 이유

박태환 선수가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기쁩니다. 무엇보다 그가 금메달을 따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전 박태환 선수의 이 경기가 열리기 직전까지 ‘혹시 그가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무척 고민스러웠거든요.

이유는 한국 언론 때문입니다. 이 경기가 열리기 직전까지 한국 언론이 박태환 선수에게 쏟은 관심은 사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각 방송사마다 특집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내보냈고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된 뉴스에서 그는 항상 관심의 초점이었습니다. 박태환 선수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광고에도 여러 편 출연했지요.

박태환, 그는 웃으면서 팬들에게 화답했고 애국가를 ‘즐겁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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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0일 MBC 뉴스 화면캡쳐.

하지만 전 조금 우려스럽더군요. 그에게 쏟아지는 너무 큰 기대가 한편으론 그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가정이긴 합니다만, 금메달을 획득했기 망정이지 만약 메달 획득에 박태환 선수가 실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광고에 출연한 것 등이 그를 향한 비판의 메뉴로 등장했을지 모릅니다. ‘수영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죠.

어찌 됐든 박태환 선수는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이죠. 박태환 선수의 지적처럼 그동안 수영에서 아시아는 사실상 변방에 머물렀는데 그런 편견을 깨는데 그의 메달 획득이 상당 부분 기여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멘트를 할 수 있는 박태환, 그가 참 대견해 보이더군요.

그런데 전 시상식을 보면서 박태환 선수의 매력이 더 돋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통상 애국가가 연주되면 한국 선수들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려 놓으며 ‘국기에 대한 맹세’ 자세를 취합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민호 선수도 그랬고, 여자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박태환 선수는 애국가가 연주되는 그 순간, 꽃다발을 두 손에 들고 웃으면서 ‘조용히’ 애국가를 부르더군요. 전 그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재의 망령’ 국기에 대한 맹세 … 꼭 해야만 하나

물론 한국 선수들이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국기에 대한 맹세’ 자세를 취하는 건 아닙니다. 그것 자체를 탓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서 얻은 값진 결과를 ‘세계인’과 확인하는 과정에서 꼭 국가와 민족에 대해 ‘맹세’를 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아마 관행적으로 아니 관습 혹은 무의식적으로 우리들은 ‘그런 교육’을 받아왔고 그래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거나 연주가 되면 자동적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 자세를 취하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는 지난날 군사독재정권이 우리 사회에 심어놓은 ‘잔재’입니다. 그것도 철폐되어야 할 그런 잔재입니다. 인권운동가 오창익씨가 최근 펴낸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삼인)이란 책을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했던 ‘황국신민서사’를 고스란히 베낀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1976년 10월4일부터 국기 하강식을 거행하면서 애국가 제창 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하게 했다. 오후 5시(또는 6시)만 되면 전 국민을 ‘일시 멈춤’ 상태로 만들었던 희한한 발상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제국주의와 독재의 유산을 30년 넘도록 청산하지 못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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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0일 SBS 뉴스 화면캡쳐.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로 받아들이자

박태환 선수만 해도 수영이 좋아서 수영을 했고, 재능을 인정받았죠. 물론 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올림픽이 기본적으로 국가간 대항전이라는 ‘암묵적 명제’가 전제된 상태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한국의 경우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스포츠에 국가와 민족을 ‘혼용’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 대표선수들도 그동안 자신이 흘린 땀과 노력이 금메달로 인정받았다는 걸 생각하기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닐까요. 기대를 모았던 선수가 메달 획득에 실패할 경우 ‘국가적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바로 그런 ‘국가와 민족’ 위주의 기대와 사고 방식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박태환 선수의 시상식을 보면서 ‘유쾌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노력이 금메달로 확인되는 순간을 편안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밝은 표정의 미소를 지으며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웃으면서 조용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금메달을 따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무의식적으로 항상 손을 가슴에 얹는 동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 지난날 군사독재정권이 우리 사회에 심어놓은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전 올림픽에서 애국가가 연주될 때마다 우리 선수들이 자동적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 자세를 취하는 것 역시 철폐되어야 할 잔재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오창익씨의 책을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우리 몸에 각인되어 있는 독재의 망령과,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그 망령들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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