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제를 해결하자/과학과 진리

[과학] 우연 vs 필연

by 베리베리 2008. 7. 13.


[서평]우연과 필연

자크 모노 지음, 김진욱 옮김, 범우사, 1985

 
 
아무도 읽지 않는 책 2(서강대 출판부, 2008)
 이덕환(서강대, 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같을 수 없고, 내일이 오늘과 같을 수도 없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업보(業報)인 셈이다. 자연과 인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통일된 견해를 뜻하는 세계관은 그런 우리에게 등대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근거로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미래를 맞이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런 우리에게 근대 과학혁명이 물려준 철저한 인과율(因果律)을 바탕으로 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환상적인 것이었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것이 지극히 단순한 자연법칙에 따라 예정되어 있고, 그에 따라 작동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충분히 노력만 하면 우리의 미래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정말 매력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상대성 이론을 찾아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끝까지 인과율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19세기 말부터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연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예측하려면 필연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확률(確率)의 개념을 도입해야만 한다는 루드비히 볼츠만의 주장이 그 시작이었다. 결국 우리가 직접 그 존재를 확인할 수도 없는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서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는 수단으로 도입되었던 엔트로피에 대한 볼츠만의 확률론적 해석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확률론을 바탕으로 하는 양자론이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양자론은 미시적 원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양자 가설을 처음 제기했던 막스 플랑크마저도 양자론의 확률론적 해석에 극단적으로 저항했고, 아인슈타인은 '신(神)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양자역학의 등장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1965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분자생물학자이면서 철학자인 자크 모노가 1971년에 내놓아서 화제가 되었던 [우연과 필연]은 그렇게 등장한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해석을 생명의 세계로까지 확장한 전혀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근본적으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했던 '불확정성의 원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우연'의 결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한 생물의 진화는 물론이고 사회나 국가의 의사 결정도 확률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모노의 놀라운 발상이다. 자연과 인류 사회에서 발견되는 합목적적 현상들도 사실은 우연에 의해서 유도된 결과에 대한 우리의 자의적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노의 우주적 규모의 철학적 세계관은 그동안 등장했던 모든 세계관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주에서 관찰되는 모든 현상이 인과율에 따른 것으로 설명이 된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도 새롭다. 우리가 믿어왔던 인과율 자체가 우연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모노의 주장은 반(反)과학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복잡성의 과학에서는 모노가 강조했던 우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의 우주에는 단순히 양자론의 확률론적 해석 수준을 넘어서는 우연이 더욱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근원적으로 비선형(非線型)이고 비평형(非平衡)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197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리야 프리고진은 필연(확실성)은 종말을 맞이했다고 과감하게 주장했다. [확실성의 종말: 시간, 카오스, 그리고 자연법칙](사이언스북스, 1997)이 바로 그런 주장을 담은 책이다. 자연에서 필연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인 평형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라는 것이다. 범우사상신서로 1985년에 발간된 [우연과 필연]은 용어가 좀 낯설기는 하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과학철학의 고전이다.


[이덕환 서강대 자연과학부 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 글은 교육용으로 사용해도 좋으나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Designed by Duckhwan Lee, March 2000

출처: 이덕환 교수의 홈페이지 http://chemistry.sogang.ac.kr/~duckhwan/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