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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의 존재/만들기전에 이미 있었다

거미줄을 만들고 관리하는 놀라운 거미의 기술

by 베리베리 2008. 9. 16.

거미처럼 편한 삶도 없어 보인다. 거미줄만 한 번 쳐 두면 귀뚜라미, 잠자리 같은 먹이가 알아서 찾아와 걸리니 말이다. 하지만 거미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의 고단함이 묻어 있다. 아침마다 이슬을 일일이 걷어내고 상황에 맞게 리모델링도 수시로 해야 한다. 또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곤충들이 좋아하는 독특한 자외선을 발생시키는 거미집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평범해 보이는 거미줄에는 이처럼 생명의 신비가 곳곳에 묻어 있다.


아침이슬은 거미의 적

거미줄에 맺힌 아침 이슬은 청초함의 대명사다. 하지만 거미에게는 밥벌이의 고단함을 더해 주는 귀찮은 존재이다. 아침 이슬은 대개 해가 뜨면 햇볕에 의해 자연스레 증발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날씨가 흐려 이슬이 거미줄에 그대로 맺혀 있으면 거미는 직접 이슬 청소를 해야 한다. 마냥 해만 기다리다 거미줄이 못 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국내 중학생들이 아침 이슬이 거미집에 치명적이어서 거미가 이슬을 부지런히 제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 듯 거미들은 다양한 기술로 거미집을 짓거나 리모델링하면서 먹이 사냥에 나선다./서산 부춘중학교 김만용 교사 제공

충남 서산 부춘 중학교 1학년 조성민·최지우 학생은 김만용 교사의 지도로 거미줄의 가로줄에서 먹이를 붙잡는 콩알 모양의 끈끈이가 물에 잘 녹기 때문에 거미가 아침 이슬을 제거한다는 사실을 발견, 지난 10일 '전국과학전람회' 대통령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물에 노출된 거미집은 접착력이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두 학생은 디지털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 어린 거미는 다리로 이슬을 콕 찍어 자신의 집에서 이슬을 제거하고 성체 거미는 다리뿐 아니라 몸 자체로 거미줄을 흔들어 제거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미가 이슬을 제거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먹이가 걸리면 거미는 거미줄의 진동이 달라지는 정도를 파악, 먹이 포획 여부를 감지한다. 그런데 이슬이 있으면 진동 감지가 어려워진다. 최지우 학생은 "기생왕거미에게 256~384㎐(헤르츠, 1초 동안의 진동 수)의 음파를 들려 주니 기생왕거미는 먹이가 걸린 줄 알고 음파 진원지로 다가왔다"면서 "이슬이 거미집에 붙어 있으면 거미의 감지 범위가 축소된다"고 말했다.

어린 연구자들은 또 다른 의문을 품었다. 끈적거리는 거미의 다리가 미끄러운 물방울을 톡 찍는다는 자체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조성민 학생은 "기생왕거미의 다리를 디지털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거미 다리의 날카로운 잔털이 물방울을 찍어내는 일종의 갈고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고 말했다.

거미집에 기술을 넣어 부가가치를 높인다

거미의 비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거미에게 집은 먹이 잡는 그물이면서 동시에 거미를 보호하는 요새이기도 하다. 미국 아크론 대학의 제벤버겐(Zevenbergen) 교수 연구진은 '검은과부거미(black widow spider)'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집을 다르게 리모델링한다는 사실을 발견, 지난 6월 '동물행태학(Animal Behaviour)지'에 발표했다.

제벤버겐 교수는 "검은과부거미는 먹이를 잡을 때는 끈끈한 알갱이가 달린 거미줄을 거미집에서 튀어 나오게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다"면서 "반면 배가 부르면 거미집이 보다 견고해지도록 튀어 나온 거미줄을 없애고 가로줄과 세로줄을 서로 연결해 많은 매듭으로 튼튼하게 집을 짓는다"고 말했다. 매듭이 많아지면 외부의 적들이 거미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해석했다.

호랑거미(argiope spider)는 하얀 'X'자 형 거미집으로 유명하다. 호랑거미가 평범한 거미집이 아닌 독특한 거미집 건축에 애쓰는 이유 역시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2004년 서울대 교수 재직 시절에 국내에 서식하는 호랑거미의 X자형 거미집이 먹이 사냥에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흰 X자형 거미줄에서 독특한 패턴의 자외선이 반사되는데 이를 인지한 곤충들이 거미집으로 몰려간다"면서 "대개의 곤충들은 적외선은 보지 못하지만 파장이 짧은 자외선 영역은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호랑거미는 '앉아서 먹이를 기다린다'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곤충들이 식별할 수 있는 자외선 패턴을 만들어 포획 곤충을 늘리는 능동적인 생물임이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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